애즈원커뮤니티를 다녀와서

조정훈 / 우리동네사람들
  〈에즈원커뮤니티〉(이하 에즈원)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비행기로 1시간 반을 날아 도착한 일본 나고야 쥬부공항에서 쾌속선과 자동차를 타면 약 1시간 만에 도착한다. 새삼, 일찌감치 아시아는 일일생활권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에즈원을 방문지로 선택한 것은 이 공동체가 진행하는 실험이 근본적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를 푸는 데 상당히 효과적인 대안일 뿐더러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돌아보면 우리는 좋은 사회를 위해 신념을 가지고, 그 신념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삶에 익숙해져 왔다. 공동체 역시도 대의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과 양보는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왔고, 개개인의 욕구가 다 분출되면 사회의 혼란이 가중될 것임에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아니, 공동체란 무엇이고 대의란 무엇이며, 사회는, 또 욕구라는 것은 무엇인가.
  에즈원에서는 질문이 일상적이다. 독특한 것은 질문하는 방식이다.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무엇인지 살핀다. 답을 정해놓고 정답을 요구하는 질문도 아니다. 예를 들어 ‘행복하고 싶다’고 하면 ‘행복’에 대해 살핀다. “나는 행복이란 것을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해요.”라는 입장을 듣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결론 내린 정답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행복하고 싶다’는 개인의 그 마음 저변을 스스로 하나하나 살펴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간다. 처음엔 이런 방식이 낯설다보니 정답이 있을 것이란 추측 속에 그 정답을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습관마저도 결국엔 나를 살피게 되는 것임 후에 깨달았다. 이런 살핌을 ‘사이엔즈’란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고, 이것이 여타 공동체에서 찾아보기 힘든 에즈원의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연구소와 스쿨, 마을공동체
  에즈원은 크게 세 개의 틀로 구성된다. 과학적 본질의 탐구 방법이자 실현 방법이란 의미의 사이엔즈연구소, 사이엔즈 방식을 사람들에게 익히게 하는 사이엔즈스쿨, 그리고 일상적인 개념의 마을공동체가 그것이다. 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연구소와 스쿨이 마을공동체를 지탱하는 축이 되고, 마을공동체는 연구소와 스쿨의 연구 성과와 경험을 녹여내는 삶터이다.
  에즈원의 목적은 다툼이 없는 사회, 개개인이 행복한 사회를 전 지구적으로 실현해나가는 것이고, 16년 전에 소수의 인원이 모여 여기 일본 미에현 스즈카시에서 〈에즈원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는 150여 명이 함께 살아가는 도심 속 마을공동체가 되었고 적극적으로 외부에 에즈원의 경험을 알려가고 있다.
어머니 도시락 가게

  탐방 일정은 빡빡했다. 아침부터 마을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들을 돌아보며 운영자들과 미팅을 이어갔다. ‘어머니 도시락 가게’는 에즈원을 경제적으로 지탱하는 가장 큰 영역인데 30~40여 명이 함께 일을 하며 사이좋은 관계를 만드는 실험장이기도 하다. 도시락 가게의 사장 역할을 하고 있는 류상은 영업이 안정된 건 근래의 일이며 그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말하였다. 의무감으로 일을 하는 사람, 기분이 나쁘면 마구 화를 내는 사람, 가게가 어려워지니 사람보다는 돈 버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사람을 수단화하는 사람 등 도시락 가게의 애초 설립 목적과 맞지 않은 일들이 벌어져 여러 번의 재검토를 거쳐 왔다고 한다. 이제는 다들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상태를 내어놓고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아닌 편안한 상태에서 일을 조정하는 분위기가 되어 즐거운 일터가 되었다고 한다. 에즈원으로 유학을 와 도시락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도시락 주문이 많아 일은 좀 고되지만 상하관계로 서로 눈치를 보거나 인상 찌푸리며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도시락 가게는 정기적으로 연구회를 열어 일하는 사람들이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는 각자의 목적을 나누고, 목적에 맞게 해나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시간도 갖는다고 한다. 미팅 내내 분위기가 편안했다.

 

마을농장 스즈카팜
  에즈원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관은 스즈카팜이란 이름의 밭공원(마을농장)이다. 근처 대형 마트의 땅을 무상으로 빌려 2010년부터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공동체가 먹고 도시락 가게의 재료로 쓰이는 기본적인 채소들은 여기서 생산한다고 한다. 미팅은 30대 중반의 젊은 기수 코이치씨와 이루어졌는데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자기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고 했다. 농장의 운영 현황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짧게 이루어졌고, 상하가 없는 자유로운 팜의 기풍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런 기풍이 익숙지 않은 우리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누군가는 피해를 입지 않는지, 서로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는지” 등과 같은 우려의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코이치씨가 답하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의 의미가 남달랐다. 우리는 주로 억압된 상태에서 지내다보니 ‘하고 싶은 것’의 의미를 ‘일을 다 팽개치고 놀고 싶다는 것’으로 상상하게 되고, 그러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 지었지만 코이치씨의 설명을 들으며 에즈원에서 이야기하는 ‘마음껏 한다(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의 의미는 내외부의 억압이 사라진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서로 지지해준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일과 놀이가 다르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꺼내놓고 조율을 하니 참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개인도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았고, 공동체의 구조 역시 그렇게 되어 있는데, 구조에 사람을 맞추기보다는 함께 생활하는 사람을 위한 구조가 성립한다는 공감대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농장에서도 정기적으로 목적과 수단을 점검하는 연구회를 연다고 한다.

농장의 코이치씨

 

마을회관과 오피스
  에즈원의 마을회관 역할을 하는 스즈카컬쳐스테이션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고 찻집도 운영하는 등 모임 공간으로 활용되는데, 그 안에는 에즈원 커뮤니티 사람들을 위한 행정 및 상담 업무를 하는 오피스와 공동으로 물품을 구입해서 나누는 가게 조이(JOY)도 있다. 오피스는 택배나 열쇠 등을 맡기거나 집집마다 내는 공과금을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등의 기능과 함께 사람들의 고민이나 의견을 듣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50, 60대가 주축인 에즈원의 특성상 오피스를 통해 노인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쉽게 처리하니 꽤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피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에즈원 사람들 중 50여 명이 뜻을 모아 하나의 지갑을 쓰는 것이었다. 마치 가장이 벌어오는 돈을 가족들이 함께 쓰는 것처럼, 가족 같은 사이가 된 사람들이 같이 돈을 모아 관리하고 필요한 만큼 쓰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탐방단의 질문은 자연스레 “그렇다면 누군가가 돈을 마구 써버리면 어떻게 하는가”라는 우려로 이어졌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역시 우리의 억압과 단절감을 드러내는 질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오피스의 대답은 공용 돈의 지출이 많아 질 경우 마을 사람들에게 공지를 해서 쓰임을 줄이거나 더 보충하는 방법을 구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며, 우려하는 것보다 돈을 쉽게  쓰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한 지갑’에 최근 합류한 이치카와씨는 “자신도 처음에는 내 돈이 다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내 마음대로 못 쓰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막상 시작 해보니 오히려 더 편리하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돈이 늘 부족하단 생각에서 오는 억눌림이 있거나 관계에서의 억눌림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니, 소비로 욕구를 풀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학교 사이엔즈스쿨
  에즈원 사람들의 이런 분위기는 사이엔즈스쿨을 통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원할 경우 매달 열리는 사이엔즈스쿨에 참석한다. 스쿨은 보통 4박 5일로 열리며 참가자들은 그 시간 동안 자신을 깊게 탐구한다. 마이라이프 세미나부터 인생을 알기 위한 코스, 사람을 듣기 위한 코스, 사회를 알기 위한 코스 등 열리는 코스의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참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스쿨을 통해 자기자신의 흐릿하던 것들이 분명해지고, 문제의 본질을 탐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에즈원의 색깔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자신을 탐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지지하는 사람들과 직장, 마을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이 참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짧은 탐방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한번 살펴볼 새도 없이 일만 하며 살다, 나이가 들고 어느덧 병에 걸리거나 허무감에 외로워지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의 사회 현실을 돌아보며 에즈원의 실험은 여러 가지 질문과 대담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 목적과 수단을 제 위치로 돌리는 것이 에즈원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사람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와 기관들이 어느새 그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생의 목적이 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본말전도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돌아가 나부터 차분히 지금껏 해온 일들의 이유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 시간 이후 스스로에게 거듭 물어보곤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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