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모심과 살림 연구소]의 계간지 11호(2017년-18년 겨울)에 기고한 글입니다. 전문을 올립니다.


애즈원네트워크 스즈카공동체의 실험과 의의

스즈카 공동체에서 모색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실험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와 노력들 소개

 

유상용
1964년생. 1992년~2009년 야마기시즘 한국실현지에서 생활. 2009년 강화도로 이주.
현재 사이엔즈스쿨코리아 사무국. 애즈원네트워크의 한국커뮤니티를 모색하는 중이다.

들어가는 말

“모순불투명한 사회가 몇 세기인가 계속되어, 사람들은 체념에 흡사한 선입견에서,
잘못을 잘못으로 생각지 않고, 길을 걷는 데는 등불이 필요한 것이라고,
세상은 어두운 것이라고 단념하고 있는 것인가”
야마기시 미요조 (山岸已代藏, 1901~1961) <세계혁명 실천의 서(書)>에서 발췌

인간사회의 모순을 근저에서부터 척결하려는 노력이 백년 넘게 계속되어 왔다. 모순의 뿌리가 깊어서인지 때로는 피를 부르는 혁명으로, 때로는 꾸준한 개혁으로 또는 과학적인 해명으로 인간사회는 한 발 한 발 진보해 온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인공지능과 로봇과 빅 데이터 등 물질문명이 개벽적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인간 자신과 인간사회의 앞길에 대해서는 무지와 불안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고 있다.
우리는 왜 우리의 앞길에 대해 정성을 다해 모색하지 않는가? 인간과 사회전체에 대한 담론들은 어디에서 이야기되고 있는가? 이제 우리가 우리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할 때가 되었다.

애즈원 네트워크 스즈카커뮤니티

스즈카공동체의 정식 명칭은 <애즈원네트워크 스즈카커뮤니티>이다. 애즈원이란 말은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And the world will be as one에서 따온 것이다. 천국도 지옥도 없고, 국가와 국경도 없으며, 종교도 필요 없어지고, 소유도 없는 세계.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형제애, 애정으로 넘치는 하나의 세계. 그의 상상이 꿈속의 일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진실은 그런 세상이 정상이며 지금의 인간사회가 비정상일 지도 모르겠다. 애즈원네트워크는 그것을 현실에 실현하려는 활동이다. 특정의 한 단체명이 아니라 그런 뜻에 공감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함께 손을 잡고 실현해나가자는 세계적인 협력을 애즈원네트워크라고 한다.
스즈카는 일본 나고야시 근처에 있는 인구 20만의 중소 도시의 이름이다. 2001년 새로운 사회 실현에 뜻을 가진 사람들이 스즈카시의 한 동네에 모여들어서 탐구와 생활을 시작한 것이 스즈카커뮤니티의 시작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스즈카커뮤니티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일본 야마기시 공동체 출신들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야마기시즘실현지라고 부르는 공동체 안에 살던 사람들이, 울타리로 느껴지는 기존 공동체의 한계를 넘어 도시에서 이웃 사람들과도 경계가 없는 개방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는 시도가 있었고, 토쿄 같은 대도시로 옮겨간 사람도 있었지만 2000년 말부터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스즈카시로 모여들게 되었고 2001년부터는 본격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부분적 개선 개량이 아닌 근본적인 전환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바랄 것이다. 그러니까 본심에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은 세상이 어떻게 되어있기 때문일까?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머릿속은 돈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도 있다. 정말은 돈을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물자와 사람들의 도움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 전쟁은 인간세상에서 없앨 수 없는 것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유라는 울타리를 쳐서 다른 사람은 못 건드리게 하는 구조는 인간이 영원히 지켜야만 하는 숙명인가? 인간은 왜 스스로가 만든 불행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의문과 탐구, 해명과 실현이 스즈카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온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인간사회의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해결하려 한다고 하면 거창하고 복잡한 것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스즈카의 사람들은 그 출발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다고 본다.

“인류의 목적이나 인생의 목적을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진짜의 바람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안의 바람을 실현한다. 그 것이 진짜 목적이 아닐까요?”
-스기에 유지 <정다운 사회>에서 발췌

현상은 복잡하지만 문제 해결의 근원은 간단한 곳에 있지 않을까? 다만, 자본이 중심에 있는 사회를 어쩔 수 없다고 수긍하거나 인간이 스스로를 묶는 법률과 소유 등을 당연한 것으로 두고 그 위에 약간의 개선과 개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심을 가장 소중히 해서, 자신의 바람이 무엇인지 잘 보고 그 바람을 실현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관념론이나 종교-심리적인 것으로 보기도 쉽지만 그런 얘기는 아니고, 그 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가지고 사회의 가장 밑바닥부터 순서 있게 전환해가려는 것이다. 그런 방식의 첫 순서는 우선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알기 위한 연구 기회를 갖는 것이다.

연구와 탐구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고 하더라도 인간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을 알 수 없고, 인간으로 구성되는 사회 역시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더구나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는 오래된 선입견들이 바른 이해를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이기적이라 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위험하다’ 라든가, ‘법률과 형벌이 없으면 사회는 엉망이 된다’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인간과 사회에 대한 견해도 제로에서부터 다시 검토하여 정말의 인간, 본래의 사회는 어떤 것인가 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스즈카에 모인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시작한 처음부터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알고 많은 에너지를 거기에 쏟았었다. 우선 가장 먼저는 일상에서 떨어져 차분히 자신을 살펴보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단지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찰하는 순서와 포인트 등을 해명해가며 몇 가지 코스(프로그램)를 만들게 되었다. 이 코스들은 외부 사람들에게 전하기 이전에 커뮤니티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빠뜨릴 수 없는 자기탐구의 기회가 된 것이었다. 자기를 살펴보는 기회가 정착되어가면서 이것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활동의 중추로서 명확히 자리 잡게 되었고, 그 것이 발전하여 ‘사이엔즈 스쿨’이라는 기관으로 정비되게 된다.
커뮤니티 초기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이전부터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온 사람들도 있었다. 연구라고 하면 특별한 것을 떠올릴 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스즈카에서의 활동이나 발생한 일 전부가 하나의 실험이고 연구 자료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연구의 방향이나 과제도 명확하게 되었다. 즉 자신들의 삶 전체가 인간연구이고 사회연구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살아가는 일상 전부가 자기탐구이자 사회연구이고 실현의 장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삶과 수행, 실천이 분리될 틈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지점이 스즈카에서의 사회실험이 가진 큰 특징이자 지금의 여러 사회적 실천 활동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착안점이기도 하다.


스즈카커뮤니티의 모든 활동은 전부가 실험단계의 시도이고 체험한 것은 전부 연구자료가 된다. 모두가 지향하는 사회나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명확히 하기 위해 각자 또는 함께 검토하고 시도하고 다시 검토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탐구가 쌓여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보통 사회 연구라고 하면 사회시스템이나 운영방법의 연구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 것 보다 더 중대한 것이 위에서 언급한 ‘인간관’, ‘사회관’이라는 것이다. 스즈카 사람들은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스쿨과 연구소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이렇게 커뮤니티와 스쿨과 연구소 세 부문이 서로 이어지고 보합해가서, 고정 정체 없이 순환 성장해가는 것이 스즈카커뮤니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제실험

2001년부터 2005년까지의 기간에도 회사를 만들거나 음식점, 보육원 경영 등도 하면서 일과 생활의 여러 변화와 실험을 계속하였다. 거기에 스쿨과 연구소의 진전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 이해가 깊어지고 그리는 사회의 방향과 목적이 명확해지면서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 사이가 되었다. 이상한 말 같지만 당연한 말이다. 가족같이 편한 사이라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지 무엇을 해야만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지점이 또한 지속 가능한 사회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관계의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해도 좋지만, 뭐라도 해볼까” 하고 시도한 것들이 스즈카커뮤니티의 몇 가지 경제실험이었다. 물론 이 역시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커뮤니티 사람들이 지향하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장인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연구와 실험을 반복하며 만들어가려는 것은
< 회사를 위한 사람 >에서 < 사람을 위한 회사 >로
< 규칙도 명령도 상하도 책임도 없는 회사 >
< 무엇이든지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회사 >
<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회사 >와 같은 것이었다.

* 어머니 도시락 : 2007년에 도시락 20개로 시작했다. 지역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도시락가게가 목표.
현재 하루 1000개를 만들고 있다. 커뮤니티사람들의 식생활도 일부 맡고 있다.
경영적으로도 성공적이어서 도시락 업계의 평균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이 나 오고 있다고 한다.

* 스즈카 팜 : 커뮤니티의 젊은이들이 만든 회사. 처음에는 판매하고 남은 것을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제공했지만, 하고 싶은 것은 커뮤니티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맛있는 쌀과 야채를 선물하고 싶다는 것임을 알고서는 커뮤니티의 삶을 풍성하 게 하고 있다.

* 스즈카컬쳐스테이션(SCS) : 커뮤니티와 지역사회의 접점이다.
공동체-문화-에코의 세 가지를 사업 축으로 하여, 공간대여, 강좌개최, 문화사업 등을 하고 있다. 커뮤니티의 센타 역할도 하고 있다.

이상의 사업들은 ‘애즈원 컴퍼니(주식회사 애즈원)’로 총칭하는 데 컴퍼니는
* 음식업, 농업, 건축, 부동산업 등을 운영하여 커뮤니티의 식생활, 주거생활의 일부를 담당한다.
* 업종이 늘어가면서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일이 늘어난다.
* 사이엔즈 스쿨이나 사이엔즈 연구소를 경제적으로 지원하여 커뮤니티의 근간을 충실하게 한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롭고 안심한 상태에서 자신을 발휘하고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경제실험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실은 그 자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람이 실현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애즈원 스타일의 커뮤니티 경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삶이 일 따로, 생활 따로 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스즈카의 회사들은 회사가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가정을 생각한다. 그 집의 식생활과 육아와 가족의 건강이 또한 회사의 일인 것이다. 이렇게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회사만들기가 곧 애즈원사회 만들기, 다른 말로 하면 ‘하나의 사회 만들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경제가 순환하는 방식

커뮤니티가 시작할 무렵부터도 돈이 개재하지 않는 관계에 대한 모색은 있어왔다.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한 가족과 같이 돈도 서로 나누어 쓰는 관계를 지속해왔고, 여러 가지로 형태는 바뀌어왔지만 경계나 울타리가 없는 삶을 지향하는 마음은 계속되어 왔다.
커뮤니티에 모여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몇 년 전에는 지역화폐 방식을 도입하여 ‘애즈원커뮤니티통화 링카’라는 이름으로 실험을 해보기도 하였다. 3년 정도 지속했었는데 한 때는 매월 3,000만원 정도의 유통으로 되어 일본 전체로서도 큰 규모의 지역화폐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실험을 하던 중에도 그 것에 대한 검토와 연구도 동시에 진행되어, 이 방식은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방식일까? 어딘가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하고 탐구를 계속 하였다. 그러던 중 몇 사람으로부터, “지역화폐가 기존 화폐를 보완하는 면은 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자기의 것을 가지는 것을 전재로 해서, 주고받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따로 자기의 것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삶과 관계다” 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얼마 뒤 지역화폐 방식도 내려놓고 제로에서부터 다시 검토하게 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실험과 변화 뒤에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커뮤니티 공간 JOY>라는 돈이 필요없는 가게다. JOY는 애즈원이 지향하는 인간관계에 걸 맞는 물자의 순환방식, 마음의 순환방식에 따라 시도하고 있는, 돈이 필요없는 경제방식이다.
돈이 필요없는 경제가 가져오는 혜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지금은 각각의 가정에서 매끼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부들이 바쁘지만, JOY에서는 1명의 조리사가 만든 100명분의 반찬이 놓여져 있고 엄마는 식사 때에 맞춰 찬합을 들고 와서 가져가면 된다. 각 가정의 음식쓰레기는 퇴비로 되어 스즈카 팜의 비료가 되고 생산물은 다시 JOY로 돌아온다. JOY로 야채가 올 때는 불필요한 포장이 없이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덜어서 가져간다. 대용량의 식료품들도 마찬가지다.

커뮤니티 사람들 중에 희망하는 사람은 <엔조이 멤바>가 될 수 있다. 엔조이 멤바는 자신의 통장과 부동산 서류 등을 <커뮤니티 허브>라고 하는 곳에 맡기고, 명의는 그대로 두지만 돈과 물자는 물처럼 흐르는 생활로 들어갈 수도 있다. 엔조이 멤바는 JOY의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도 전면적으로 사용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원하지 않는 사람은 기존 사회의 방식대로도 살아갈 수 있다. 풀어놓고 개방할수록 더욱 안심하고 만족하는 삶을 맛보는 것이다. 이것도 또한 마음의 문제와 물질-경제의 문제가 둘이 아니게 해결되는 ‘하나의 사회’에서의 경제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과 같은 스즈카커뮤니티의 경제가 순환하는 방식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로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인간관계가 아닐까? 그 것으로 지속가능할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회에서 경제행위를 하고 있는 자신을 잘 살펴보면 자신은 어떤 마음의 바탕에서 움직이고 있는가? 사람에 대한 의심이나 불안이 깔려있지는 않은가?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않아, 본심을 잃게 되는 사회-경제방식 안에서 살고 있다.

일본사회 시민운동과의 이어짐

스즈카커뮤니티의 활동은 일본 사회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을까? 자신들만의 만족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음도 역시 중요하다. 예전의 공동체들이 어려운 시대를 거쳐 오면서 우선 살아남기 바빠서 외부로 눈을 돌리지 못했다거나,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거나 다른 곳과 차별을 두는 태도를 취하면서, 거꾸로 스스로가 고립되어 정체 소멸되는 예도 많았기 때문이다. 스즈카커뮤니티의 사람들도 이런 지점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스스로의 탐구가 진척된 뒤에는 연구소나 스쿨의 성과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지원하는 것을 계속해오고 있다.
* 스즈카커뮤니티 멤바인 카타야마 히로코씨는 독일의 생태학자인 ‘에크하르트 한’선생과 함께 환경관계의 활동을 계속해왔는데 2년전 GEN(Global Ecovillage Network) Japan의 대표가 되어 일본의 생태공동체들의 활동과 연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유네스코 인증 프로그램인 가이아에듀케이션의 개최를 스즈카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했다.
* 트랜지션타운 스즈카 : 한국에서 ‘전환마을’로 소개되고 있는 트랜지션타운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2년전에는 전국대회를 스즈카커뮤니티에서 진행했다.
* 쉐어하우스, 공유경제를 지향하는 그룹들과의 교류 :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시도하고 있는 쉐어하우스 등에서도 탐방이나 코스참가 이후의 교류가 이어져 내용적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한 영감을 얻고 운영의 내용을 깊게 해가고 있다.
스즈카커뮤니티로서는, 작지만 새로운 사회의 실태가 있다는 장점을 통해 일본 사회의 여러 시민운동과도 이어지고 영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커뮤니티도 지속 가능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다시 개벽

서양에서 혁명을 일으킬 때 조선 사람들은 개벽을 꿈꾸고 있었다. 조선의 근세 사상, 동학 증산 원불교 등을 통해 일관한 ‘개벽’이란 것은 어떤 바람을 전하고 싶었던 말일까? 피폐해진 민중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부르던 도피안의 노래인가? 그렇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人)개벽이다. 향아설위다. 정신개벽이다. 원시반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을 소중히 하고, 사람을 알고, 사람의 가치를 실현하여, 본래의 인간사회로 돌아가는 것.
사람을 알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자신을 알고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때가 돌아온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애즈원이 지향하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인간의 생각으로 쌓아올린 허구의 사회가 무너지고, 누구나가 본심에 따라 살 수 있는 사회가 돌아올 때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애즈원이 지향하는 사회를 꿈꾸며, 한국에서도 실현되는 길을 뜻있는 사람들과 같이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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